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북 김천(金泉) 사람이다.
1919년 김천군 김천읍 본동(本洞)에 살고 있었으며 3월 1일 독립을 선포하고 이곳에서 가까운 대구(大邱)에서는 대대적인 학생들의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김천읍 황금동(黃金洞) 교회에서 김충한(金忠漢)·김수길(金秀吉) 등과 주동이 되어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는 주남태(周南泰)와 같이 종이태극기를 많이 만들기로 하는 등 임무를 분담하고 거사는 3월 11일 오후 3시 김천 욱동(旭洞) 감천교(甘川橋) 부근에서 거행하기로 약정하였다. 또 그는 종이 태극기 50본을 만들어 김천보통공립학교(金泉公立普通學校) 학생인 석동준(石東俊) 등에게 나누어 주고 거사에 참여하도록 권유하는 등 활동하다가 거사 직전인 3월 11일 오전 애석하게도 일경에게 발각되어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5월 5일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5. 5 大邱地方法院 金泉支廳)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453∼1456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457·458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