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5월부터 중국상해 (中國上海) 에 수립 (樹立) 된 대한민국 (大韓民國) 임시정부 (臨時政府) 를 지원 (支援) 하기 위하여 김철 (金澈) , 기산도 (奇山度) , 황병학 (黃炳學) , 박은용 (朴殷容) 등 동지 (同志) 들과 함께 독립운동 (獨立運動) 을 위하여 군자금 (軍資金) 845원 (圓) 을 모집 (募集) 하였으며 서울에서 다시 군자금 모집 (軍資金募集) 으로 활동 (活動) 하다가 일경 (日警) 에게 피체 (被逮) 되어 예심판결 (豫審判決) 을 받고 공판중 (公判中) 병보석 (病保釋) 으로 자택 (自宅) 에서 요양중 (療養中) 1920.8.26 순국 (殉國)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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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남 영광(靈光) 사람이다.
1919년 5월 3·1독립운동 이래 뜻있는 동지들과 함께 중국 상해(上海)에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의 독립사상 고취와 〈국민대회 취지서(國民大會趣旨書)〉·〈고유문(告諭文)〉등을 인쇄, 선전하면서 동지 규합에 힘쓰는 한편 전남 순천(順天)·곡성(谷城), 전북 남원(南原)·순창(淳昌) 등 각 지역에서 845원을 모집하였다.
1919년 10월 21일 부하 여러 명과 함께 서울의 부호 홍종욱(洪鍾郁)으로부터 군자금 370원을 모집한 사실이 일경에게 발각되어 붙잡혔다.
그는 1920년 5월 5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예심판결을 받고 공판에 회부되었으나 병보석으로 출감하여 자택에서 요양하던 중 고문의 후유증으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豫審終結決定書(1920. 5. 5 光州地方法院)
- 除籍謄本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9輯 386·387·388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