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유생으로 정읍에서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하고, 1907년 11월경 창의하여 1909년 5월까지 전북 순창(淳昌)·태인(泰仁), 전남 담양(潭陽)·장성(長城)·광주(光州)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음력 2월 말부터 전북 순창 및 전남 장성 일대에서 부하 60명과 활동하였으며, 1908년 11월 10일부터 1909년 음력 2월 10일까지 순창·담양·광주 일대에서 장순흥(張順興) 등과 총기 20정을 모집하였고, 칼을 휴대한 의병 30여 명을 지휘하여 식료품·짚신 등을 모집하였다. 이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1908년 8월 18일 장성군(面名 미상) 용후리(龍後里)를 습격하여 일본군 수비대에 편의를 제공한 김참봉을 잡아 지붕 위에 올려놓고 집에 불을 질렀으며, 1909년 11월 20일경 담양군 용면(龍面) 추월산(秋月山)에서 광주수비대 야마다[山田] 소위가 이끄는 일본군과 전투를 벌인 사실이다. 또 동월 말일 경에는 총기 20정을 휴대한 부하 80명을 지휘하여 담양군 산면(山面) 월산리(月山里) 이모(李某) 집에 침입하여 ‘우리는 의병인 바 제복(製服) 및 조발비(調髮費) 3백 냥을 출급하라’고 하여 엽전 3백 냥을 군수금으로 모집하기도 하였다. 1909년 5월 8일 순창군 쌍치면(雙置面) 학선리 오룡촌(五龍村)에서 전사하였으며, 묘는 정읍 구룡동(九龍洞)에 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暴徒에 관한 건(收 제433호, 1908. 12. 10), 暴徒에 關한 編冊
- 趙良玄 判決文(光州地方法院, 1909. 10. 8)
- 張順興 判決文(光州地方法院, 1909. 10. 11)
- 全羅北道의 脈과 全北人物(전북대학교 전라문화연구소, 1990) 712면
- 大韓帝國期 湖南義兵硏究(홍영기, 일조각, 2004) 534면
- 暴徒首魁 기타에 관한 건(警秘發 第917號, 1908. 11. 26), 暴徒에 關한 編冊
- 金相龍 判決文(光州地方法院, 1909. 11. 12)
- 全北義兵史(전북향토문화연구회, 1992) 591∼59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