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북 청도(淸道) 사람이다.
1919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雲門面 新院里)에서는 청년유지 김상구(金相久)·김종태(金鐘台)가 상경하였다가 감격에 넘친 3·1독립운동을 겪고 고향으로 돌아와 그를 비롯한 애국 청년들에게 독립만세운동을 제의하므로 시위계획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는 1919년 3월 15일 김상구·김종태·손기현(孫琪鉉)등 수명의 동지들과 만세운동의 거사를 위하여 격문 20여 매를 작성하여 이날 어두운 밤을 틈타 면내 각 동리에 부쳤는데 며칠 뒤인 3월 18일 일경들로부터 이 사실을 조사하기 위하여 호출을 당하자 서로 힘을 합하여 운문면사무소로 가서 독립만세시위를 단행하자고 협의하게 되었다.
계획에 따라 이들은 면사무소로 가서 면서기로 하여금 '대한독립만세'라고 한자씩 쓰게 하고, 3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면사무소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를 누비면서 면장 이영호(李永浩) 집으로 몰려가서 면장에게 독립만세를 고창할 것을 강권하면서 만세시위운동을 벌이다가 3월 20일 대구의 일본군 헌병분대에 의해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5월 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아 항고하였으나 7월 5일 대구복심법원과 9월 25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1919. 5. 2 大邱地方法院)
- 判決文(1919. 7. 5 大邱覆審法院)
-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119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44∼447面
- 判決文(1919. 9. 25 高等法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437∼1443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