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제주(濟州) 사람이다.
1932년 3월 하순경 구우면(舊右面) 신창리(新昌里) 북해안 축항(北海岸築港) 부근에서 김두진(金斗進)·고자봉(高子奉)과 같이 5인조 결사(結社)를 조직하여 소년부서를 담당하고 4월 30일에는 메이데이 기념 시위운동을 계획하였으며 5월 1일 서당학생 100여명을 규합하여 구우면 용수리(龍水里)에서 시위행진을 주동하였다. 1933년 8월 상순경 신창리 서당의 공립보통학교로의 전환과 식민지 교육에 반대하는 연설을 하여 주민의 여론을 환기시키면서 김윤옥(金允玉)과 함께 소녀야학회(少女夜學會)를 개설하여 재학생들에게 연 25회에 걸쳐 독립정신 고취를 위한 연설을 하다 일경에 붙잡혔다.
1937년 4월 12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37. 4. 12 光州地方法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