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격문(檄文) : 1. 어떤 일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어 부추기는 글. 2. 급히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각처로 보내는 글. 3. 군병을 모집하거나, 적군을 달래거나 꾸짖기 위한 글.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한일청은 서울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 2학년 재학 중인 1926년 6·10만세운동에 참가하여 태극기와 격문을 배포하였다가 체포되어 집행유예를 받았다.
1927년 조선학생과학연구회(朝鮮學生科學硏究會) 집행위원이 되었고, ‘과학운동(科學運動)’의 발간에도 참여하면서 청년운동과 사회운동을 통해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이 무렵 고려공산당청년회(高麗共産黨靑年會) 경기도위원회 산하 학생야체이카 책임자를 지냈다.
1929년 4월 일본 동경(東京)으로 건너가 ‘조선운동(朝鮮運動)’의 기자로 활동하였다. 동년 5월경 귀국하여 고향 예천(醴泉)에서 석유상점 및 중앙일보(中央日報) 예천지국을 경영하였다. 이 해 제4차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사건에 연루되어 일경에 체포되었다. 1930년 6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32년 6월 경북 예천에서 박호철(朴鎬哲)·김동필(金東弼) 등과 함께 비밀결사 예천적색농민조합(醴泉赤色農民組合)을 조직하여 조선의 독립과 신사회 건설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동년 11월 동지들과 함께 김기석(金己石)의 집에서 모여 앞의 결사를 해체하고 무명(無名)의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박호철은 조직부 김기석은 선전부 황창섭은 자금부를 맡고, 한일청은 총책임자 및 서무부를 담당하였다. 이후 역(驛)그룹, 교원(敎員)그룹 등의 결성을 도모하는 등 결사의 확대강화에 노력하여 예천우편소 내 지부, 적색독서회를 조직하였다. 1934년 예천농업보습학교(醴泉農業補習學校) 동맹휴교를 지도하다가 동년 3월 일경에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한일청은 1935년 5월 10일 대구지방법원과 1936년 5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1936년 10월 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창작과비평사, 1996) 527~52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3집 1448~1489면
- 학생과학연구회 집행위원회에 관한 건(1927. 6. 1) 思想問題에 關한 調査書類(2)
- 高等警察要史(慶北警察部, 1934) 298면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判決文(大邱覆審法院:1936. 5. 30)
- 判決文(大邱地方法院:1935. 5. 10)
- 조선학생과학연구회 집행위원회에 관한 건(1927. 10. 19) 思想問題에 關한 調査書類(3)
- 判決文(高等法院:1936. 10. 8)
- 東亞日報(1930. 3. 23, 1931. 2. 22, 1934. 12. 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