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전남 영광(靈光) 사람이다.
1906년 봄에 김용구(金容球 : 후에 의병장이 됨)와 국권회복을 계획하는데 뜻을 같이하여 일심계(一心契)를 창설하고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1907년 8월 8일 족질 김용구(金容球)가 기삼연(奇參衍)과 동맹하여 의병을 일으키자 8월 11일 박용근(朴溶根)·오태윤(吳泰允)·이영화(李永華)·정희면(鄭熙冕)·이종택(李鍾宅) 등과 함께 의병 수십명을 모집하여 김용구(金容球) 의진을 지원하였다.
같은 달 12일 영광읍(靈光邑) 성내(城內)에 이르러 적과 접전하였으나 낡은 무기와 적은 인원으로 밀리게 되자 화개(花開)로 행군하여 일군 10여명을 사살하였다.
그후 화개(花開)·연곡사(蓮谷寺) 남문(南門)·안치(安置) 등지를 전전하며 일준과 대마(大馬)·대청산(大淸山)에서 접전하다 1907년 8월 26일 일군에 의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제적등본
- 족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2권 687∼690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