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충남 홍주(洪州) 사람이다.
1906년 5월 민종식(閔宗植) 의병장이 홍산(鴻山)에서 창의하고, 서천(舒川)·보령(保寧) 등지를 거쳐 홍주(洪州)에 입성하자 신현두(申鉉斗)·김상덕(金商悳)과 함께 합세하고 유병소 서기에 임명되었다.
1906년 5월 20일에서 5월 31일 사이에 의병진에서 빼앗았던 홍주성(洪州城)을 함락당하자 일본군은 역습으로 공격을 개시하여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져 여기에서 김상덕(金商悳)을 비롯하여 80여명의 장병이 순국하고, 윤석봉(尹錫鳳)·이상두(李相斗) 등 80여명이 일본군에게 붙잡혔으며, 그중 남규진(南圭振)·문석환(文奭煥) 등 9명과 함께 일본의 대마도(對馬島)에 유배되어 억류생활을 하였다. 이때 억류중에도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과 10명의 의사(義士)간에 우국충절에 관한 시를 많이 지었다.
1906년 12월 17일 최익현(崔益鉉)이 유배지인 대마도(對馬島)에서 순절하자 유배중이던 신보균을 포함한 10명의 의사 임병찬(林炳瓚)·남규진(南奎振) 등 모두가 흰 두건을 쓰고 장례집사가 되어 존제(尊祭)를 지내고 반구(返驅)를 따라 귀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매천야록 38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35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16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2권 132·134·151·157·173·180·198·209·232·29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3권 97·104·113·129·133·139·142·149·152·161·171·174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