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30년 1월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梨花女子高等普通學校)에 재학 중 광주학생운동의 동조시위를 계획하고 이를 주도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9년 11월 이후 일어난 광주학생운동 소식을 전해 듣고 1930년 1월 9일경 동급생 최윤숙(崔胤淑)ㆍ김진현(金鎭賢)과 함께 만세시위운동을 계획하고 준비하였다. 최복순은 당시 기독교청년회(基督敎靑年會)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근우회(槿友會) 서무부장이었던 허정숙(許貞淑)과 광주학생운동의 동조시위를 주도하였다. 최복순 등은 1월 12일 최윤숙의 집에 모여, "학교는 경찰의 침입을 반대하라, 식민지 교육정책을 전폐시켜라, 학생 희생자 모두를 석방시켜라, 조선 청년 학생이여, 아아, 일본의 야만정책에 반대하자, 각 학교의 퇴학생을 복교시켜라" 등 6개 항목을 결의하였다. 각 학년 간의 단결을 위해 학년별로 본부를 정하여 상호 연락을 취했는데, 최복순은 4학년 본부를 맡았다. 또한 정신여학교(貞信女學校) 등 서울 시내 각 학교와 연락을 취하고 격문과 태극기를 준비하는 등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30년 1월 15일 이화여고보 교정에서 300여 명의 학생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서 학교 밖으로 나가 타교생들과 함께 격문을 뿌리며 시위를 계속 하려다가 저지당하고 학우 약 50명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30년 3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 1930. 3. 22)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受刑人名簿
- 朝鮮日報(1930. 1. 16)
- 東亞日報(1930. 2. 20, 3. 19, 3. 23)
- 中外日報(1930. 1. 30, 2. 11, 2. 21, 3. 20)
- 每日申報(1930. 1. 31, 2. 11, 3. 19, 3. 20, 3. 23~26, 9. 16, 1932. 7. 8)
- 新韓民報(1930. 3. 13, 4. 3)
- 私立梨花女子高等普通學校의 動搖雰圍氣에 관한 件(1930. 2. 21) 思想에 관한 情報綴(2)
- 私立梨花女子高等普通學校生徒의 盟休에 관한 件(1931. 9. 7) 思想에 관한 情報綴(1)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2002) 제51권 58~59, 70, 107, 135~144면, 제52권 53~57, 179~184면
-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