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 10. 10. 이석용 의진 (李錫庸義陣) 이 거의시 (擧義時) 입진 (入陣) 하여 중군장 (中軍將) 으로 임명 (任命) 되어 의병 (義兵) 과 군기 (軍器) 등을 모으고 활동 (活動) 하였으며, 1908. 10월에는 임실 (任實) , 장수 (長水) , 남원 (南原) 등지 (等地) 를 이동 (移動) 하면서 왜군 (倭軍) 과 전투 (戰鬪) 하다가 부장 (部將) 들의 전몰 (戰歿) 과 인원 (人員) 및 군비 (軍備) 의 열세 (劣勢) 로 의진 (義陣) 이 해산 (解散) 된 후 (後) 에도 계속 (繼續) 하여 동지 (同志) 들을 규합 (糾合) 하며 군자금 (軍資金) 을 모집 (募集) 하고 일군 (日軍) 과 항전 활동 (抗戰活動) 한 상당 (相當)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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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충남 논산(論山) 사람이다.
1907년 10월 10일 이석용(李錫庸) 의병장이 마이산(馬耳山)에 제단을 세우고 고천제향(告天祭享)한 후 기의하자 이에 합세하여 중군장(中軍將)이 되어 의병과 군기를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8년 9월 25일 이석용(李錫庸)을도와 임실(任實)·장수(長水)·남원(南原)·함평(咸平) 등지에서일본군과 맞서 싸웠으나 날이 갈수록 핵심 부장들의 전몰과 군기 및 인원의 열세로 인하여 의병진영이 해산되자, 그는 계속하여 남은 동지들을 규합하여 활동하였다.
1912년 10월 22일 박보국(朴甫局)·김필수(金必洙) 등과 함께 장수군(長水郡) 진전면(眞田面)에서 세금 등 212원 96전을 모집하고, 동년 12월 17일에는 임실군(任實郡) 남면(南面)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여 일본 군경과 전투를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60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2권 516·53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1권 931·934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