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0일경 곽상훈(동래고보출신)이 독립선언서를 지참 귀향하므로서 동래고보를 중심으로 모의가 시작되었으며, 곽상훈, 추규영, 이환, 엄진영, 김인호등 수명이 엄진영의 집 등에서 운동모의 태극기 준비, 선언서등사 등을 하여 동년 3월 13일 동래장날 동래군청앞에 세워진 망미루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부르자 장군들이 호응하여 삽시간에 기세가 충천하였으나 기마순사 및 수비대의 탄압으로 체포되어 부산지방법원에서 1년 6월형을 언도받고 대구복심법원에서 1년형을 언도받아 대구감옥에서 복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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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역(服役) : 징역을 삶.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부산 동래(東萊) 사람이다.
1919년 3월 7일부터 12일까지의 기간에 동래군(東萊郡) 동래면(東萊面) 복천동(福泉洞)에서 동래고등보통학교(東萊高等普通學校) 재학생인 엄진영(嚴進永)·김귀룡(金貴龍)·고영건(高永建) 등과 같이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그리고 학교비품과 등사판으로 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 500여매와 다량의 태극기(太極旗)를 인쇄하여 3월 13일 동래군청(東萊郡廳) 앞에서 장날에 모인 다수 군중에게 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와 태극기(太極旗)를 배포하면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주도하다가 붙잡혔다.
동년 4월 30일에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명적표(부산교도소)
- 고등경찰관계적록
- 3·1운동실록(이용락) 604∼60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18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260·261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