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 2월 친부 (親父) 인 이상룡 (李相龍) 이 대한협회 안동지회 (大韓協會安東支會) 와 협동학교 (協東學校) 를 설립 운영 (設立運營) 할 때 실무 (實務) 를 맡아 구국적 (救國的) 사상 (思想) 의 고취 (鼓吹) 와 인재양성 (人材養成) 을 위하여 활동 (活動) 하다가 1911. 1월 친부 (親父) 와 함게 만주 (滿洲) 로 망명 (亡命) 하여 유하현 (柳河縣) 에서 경학사 (耕學社) 설립 (設立) 을 보좌 (補佐) 하고 또한 서로군정서 (西路軍政署) 독판 (督辦) 이 된 친부 (親父) 이상룡 (李相龍) 을 도와주다가 1925. 1월 정의부 (正義府) 발족 (發足) 에 참여 (參與) 활동 (活動) 한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 고취(鼓吹) : 의견이나 사상 따위를 열렬히 주장하여 불어 넣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북 안동(安東) 사람이다.
1908년 2월 부친인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이 조직한 대한협회(大韓協會) 안동지회와 협동학교(協東學校) 설립운영의 실무를 맡아 구국사상을 고취시키는 한편 인재양성 교육에 힘썼다.
1911년 1월 5일 부친을 따라 중국 동삼성으로 건너간 후 유하현(柳河縣) 고산자(孤山子)에서 경학사(耕學社)의 설립을 도우면서 보조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또한 1919년 11월에는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 독판이던 부친의 활동을 보좌하며 활동하였고, 1925년 1월 정의부(正義府)가 조직됨에 길림성(吉林省) 화전현(樺甸縣)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1932년 7월 19일 부친의 반혼제(返魂祭)를 드리기 위해 귀향한 후 국내에서 구국운동을 전개하다가 1942년 9월 2일 국운을 비관하여 자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高等警察要史(慶北警察部) 81面
- 石洲遺稿 207面
- 國外容疑朝鮮人名簿(總督府 警務局) 311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