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 12. 7. 서울 중동학교 (中東學校) 에 재학 중 광주에서 전개된 광주학생운동에 고무되어 동교 (同校) 교실내에 ‘제국주의 교육 철폐’ 등의 격문 (檄文) 을 발견하자 교단 (敎壇) 에 올라가 ‘제국주의적 교육을 배척하자.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를 획득하려는 것은 싸울 가치가 있는 싸움이다’ 라는 내용의 격문을 낭독하고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여 동맹 휴교 (同盟休校) 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등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1년여의 옥고 를 치른 끝에 징역 8월 집행유예 (執行猶豫) 4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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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고(獄苦) : 옥살이를 하는 고생.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전남 여수(麗水) 사람이다.
1929년 12월 서울 중동학교(中東學校) 재학 시 광주학생운동에 이은 각지의 동맹휴교(同盟休校)에 동참하여 신용우(申用雨)·강대성(姜大成) 등과 함께 조선학생전위동맹(朝鮮學生前衛同盟)을 조직하고 격문의 인쇄배부 및 동맹휴학·만세시위 등을 주동하였다. 김형석은 이 조직의 관계자로 동년 12월 7일 중동학교 교실에서 "동지들이여 싸우자. 우리들을 지옥혈(地獄穴)에 빠뜨리려는 제국주의적 교육을 배척하자. 언론·집회·결사의 자유를 획득하려는 것은 싸울 가치가 있는 싸움이다"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 격문을 학생들에게 낭독하고 동맹휴학과 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이 사건으로 1년 여의 옥고를 치르고 1930년 12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578∼583面
- 光州學生獨立運動史(광주학생독립운동동지회, 1974) 369·401∼429面
- 騎驢隨筆(宋相燾) 400·411·412面
- 朝鮮日報(1930. 11. 20·12. 14·12. 20·12. 21)
- 東亞日報(1930. 2. 9·9. 15·9. 20·9. 21·10. 17·10. 26·10. 31·11. 1·11. 2·11. 19∼21·12. 13·12. 16·12. 20·12. 21)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1930. 12. 19)
- 抗日學生民族運動史硏究(鄭世鉉, 1975) 375∼379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2輯 292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