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29년 11월 3일 전라남도 광주(光州)에서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다. 서울의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진현은 1930년 1월 10일경부터 학우들과 동조시위계획을 추진하였다. 최복순(崔福順) 등과 함께 시내 각급 여학교 대표들과 연락을 취하여 모임을 갖고 시위운동 방안을 협의하였다. 이들은 1월 15일 오전 9시 30분을 기해 일제히 만세시위를 벌인 후 종로네거리에 집결하여 연합시위운동을 전개하기로 약정하였다.
김진현은 교내 기숙사에서 항일 격문과 태극기 100여 장을 제작했다. 예정된 1월 15일 김진현은 전교 학생 300여 명과 함께 교정에 모여 격문을 살포하고 “독립만세”, “구속학생 석방”, “식민지교육 철폐” 등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로 인해 체포된 그녀는 1930년 3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동아일보(東亞日報)(1930. 1. 31, 2. 11, 2. 12, 2. 15, 2. 16, 2. 18, 2. 20, 3. 9, 3. 18, 3. 19, 3. 20, 3. 23, 3. 24, 3. 25, 3. 26)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02) 제51권 77~108, 145~150, 250~25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