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1936년 서울 수송공립보통학교(壽松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4월 경기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이 시기에 서양 각국의 민족운동에 관한 서적을 읽으며 민족주의 사상을 키웠다. 경기중학교 5학년이던 1940년 11월 학우인 송택영(宋澤永)·신숙범(愼淑範) 등과 조국 독립을 위한 비밀결사 조직을 계획하였다.
마침내 11월 3일 황인철(黃仁哲)의 집에서 모여 민족 해방운동에 정진하자는 취지로 조선인해방투쟁동맹(약칭 C.H.T.)을 조직하였다. 김준회는 동맹의 지도기관으로 설치된 중앙위원회의 위원에 선임되었다. 이들은 조직 확대를 위해 세포단체를 조직하고 매월 첫 번째 일요일을 회의 일자로 정했다.
같은 달 11일 중앙위원회를 폐지하고 서기국(書記局)과 이론부‧실천부를 설치했으며 김준회는 이론부에 소속되었다. 11월 16일 선언문을 작성하고 기관지 『화선(火線)』 발행을 협의했다. 23일에는 다시 중앙위원회를 설치하고 서기장과 조직 강화 확대를 담당하는 작전연합위원을 설치했다. 김준회는 작전연합위원에 선임되었다. 12월 16일 내부 방향에 이견이 생기자 김준회는 단독으로 노령에 망명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는 방식을 계획했다.
이처럼 활발히 활동하다가 1941년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년 10개월여의 미결기간을 거쳐 1942년 12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단기 3년 장기 5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 : 1942. 12. 2)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국사편찬위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