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29년 3월 광주공립사범학교 2학년에 재학 중 학우들과 사회과학을 연구하며 민족운동의 방안을 모색하였다. 이 모임은 같은 해 7월 비밀결사 독서회(讀書會)로 발전하였다. 회원들은 4개 그룹으로 나뉘어 그룹별로 사회과학을 연구하였다. 9월에는 조직을 개편하여 조사선전부, 조직교양부, 재정부를 편성하고 회원을 5개 그룹으로 나누었다.
이와 같은 활동 중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다.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光州公立高等普通學校)와 일본인 학교인 광주중학교(光州中學校) 학생들이 광주역 앞에서 격투를 벌였다. 이를 계기로 평소 민족차별과 식민지교육에 울분이 쌓였던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 광주공립농업학교(光州公立農業學校), 광주공립사범학교 학생들은 만세를 부르며 시가행진을 하였다. 김종화도 이 시위에 참여하여 일본 경찰의 저지를 뚫고 시가행진을 벌였다.
이로 인해 체포되어 1930년 10월 1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이에 공소하여 1931년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았다.
출옥 후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大阪)에서 노동운동에 참가하였다.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日本勞動組合全國協議會) 토건(土建) 대판지부(大阪支部)의 재정부 위원과 금궁지구(今宮地區) 책임자로 활동하다가 다시 1932년 11월 7일 체포되었다. 1934년 5월 12일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예심종결결정서(豫審終結決定書)(광주지방법원:1930. 7. 17)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법원:1930. 10. 18)
- 판결문(判決文)(대구복심법원:1931. 6. 13)
- 형사공소사건부(刑事控訴事件簿)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조선일보(朝鮮日報)(1930. 7. 20, 7. 23, 11. 22, 1931. 4. 23, 6. 14)
- 매일신보(每日申報)(1930. 7. 22, 10. 13, 10. 19, 10. 22, 1931. 6. 15)
- 사상월보(思想月報)(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1931) 제1권 제6호 562면
-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박경식 편, 1975) 2-1권 1440면
-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박경식 편, 1975) 2-2권 879면
-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박경식 편, 1975) 3-2권 86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13집 1613, 1621~1622, 1643~164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별집 3집 428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9권 496, 500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