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서울 사람이다.
1936년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에 가입하여 조선어학회 기관지인『한글』 편집을 맡아보았으며, 1942년 10월『큰사전』을 편찬하는데 참가하였다.
일제하 한글 수호와 연구를 목적으로 조직된 조선어학회(초기에는 조선어연구회)는 1927년 2월 10일 학회 기관지『한글』을 발간하였다. 또한 1930년 조선어총회에서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을 결의하여 3개년의 시일과 125회의 회의를 거쳐 1933년 10월 이를 완성하였다.
1936년 4월부터 조선어학회에서 사전편찬업무를 전담하게 되자 이윤재(李允宰)가 사전편찬의 일을 맡아보면서『한글』의 발행도 관여하였다. 그때 이석린이 원고 수집, 편집 및 교정 발송 등의 일을 도맡아 하였다.
그런데 1938년 10월 이석린은 상록회(常綠會) 사건에 연루되어 붙잡혔다. 상록회는 춘천고등보통학교(春川高等普通學校) 학생들이 조직한 농촌계몽활동 단체이다. 상록회를 이끌었던 어학회 회원인 신영철(申瑛澈)이『한글』지에 실은 글이 문제가 있다하여 일경에 의해 가택수색을 당하는데, 이 과정에서 이석린과 주고받은 편지가 발견되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이석린은 붙잡혀 3개월 여의 옥고를 치렀다.
그후 조선어학회에 복귀한 그는『큰사전』편찬 사업에 동참하였다. 그런데 일제가 1939년 4월부터 학교의 국어과목을 전폐하고 각 신문, 잡지들을 폐간시켜 나가자, 조선어학회는 사전 편찬을 서둘렀다. 그 결과 1942년 3월 대동출판사의 협력을 얻어 원고를 인쇄하게 되었다.
이전부터 조선어학회를 주목해 오던 일경은 조선어학회를 해체하려는 음모하에 10월 1일 조선어학회 관계인사 이중화(李重華)·이극로(李克魯)·이윤재 등 11명을 체포하였다. 그도 이때 붙잡혀 1년 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 身分帳指紋照會回報書(警察廳)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第13卷 238面
- 韓國獨立運動史(國史編纂委員會) 第5卷 25面
- 우리교육(1992) 34∼39面
- 한글학회50년사(한글학회) 9·13∼17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8卷 1011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