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경(日警) : 일제 경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고향에서 사립소학교 4학년을 수료하고 1927년 3월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일본인의 모멸적 언동과 차별대우를 체험하면서 민족의식을 쌓아가던 중 김근도(金根道)가 중심이 된 재대판가덕인친목회(在大阪加德人親睦會)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런데 동 친목회가 일제의 압력으로 해산당하게 되자 김근도·이수강(李壽康)·김성규(金成奎) 등은 1934년 3월경 새로이 가덕인청년부회(加德人靑年部會)를 결성하였고 이수룡도 이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동회는 대일 동포청년의 결속을 공고히 함과 동시에 지속적으로 민족독립의 의식을 지도계몽하여 조선독립의 기운양성에 노력하며 장래 그 추진력이 되게 한다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으나 표면상으로는 체육활동과 상호친목을 표방하였다.
이들은 1937년 3월부터 1938년 6월까지 수차에 걸쳐 독립운동의 구체적인 실행방법을 협의하였다. 그 결과 동회의 확대 강화를 도모하면서 널리 동포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한편, 중일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식량결핍 때문에 일본에 내란이 발생할 것이므로 이 기호를 포착하여 소련과 제휴하고 일제히 봉기하여 독립을 달성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후 이들은 1938년 7월부터 1939년 1월까지 수차에 걸친 친목회의 특별좌담회를 통하여 회원들에게 일제의 한국인 차별정책을 폭로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데 힘을 쏟았다.
이러한 활동 중 그를 포함한 동지들은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1942년 9월 대판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 대판형무소 확인서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3권 328·329·331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