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충남 대전(大田) 사람이다.
이곳 산내면(山內面)과 대전면(大田面)에서는 이미 1919년 3월 3일 광무황제(光武皇帝)의 인산일(因山日)에 만세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계속적으로 운동이 일어났다.
그는 대전지역의 제4차 만세운동 때인 4월 1일 박종병(朴宗秉)과 함께 주동이 되어 대전 장날에 400여 명의 군중을 규합하여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행진하였다. 이에 대항하는 일경 3명에게 부상을 입혔으나 구원차 출동한 일군수비대의 발포로 순국자 2명과 부상자 8명을 내고 그를 비롯한 주동인물이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4월 18일 공주지방법원 대전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았고 5월 1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았으며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되어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4. 18 公州地方法院 大田支廳)
- 判決文(1919. 6. 12 高等法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99面
- 判決文(1919. 5. 10 京城覆審法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133·1134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