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황해도 재령 출신으로 1920년 중반 동양척식회사 농감(農監) 최용근(崔龍根)에게 독립군자금을 요구하였다가 이듬해 일경에 체포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김효종은 고향에서 소작조합의 집행위원으로 있으며 농민의 권익확보를 위해 힘쓰는 한편, 신흥청년동맹(新興靑年同盟)·한양청년연맹(漢陽靑年聯盟)·경기도청년연맹(京畿道靑年聯盟) 집행위원 등을 역임하며 청년운동을 주도해갔다.
일본 제국주의 타도를 목표로 하는 사회주의에 깊은 관심을 갖은 김효종은 1926년 4월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및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 그리고 정우회(政友會)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그해 6월 ‘제2차 조공 검거사건’에 연루되어 일경에 체포되었다.
김효종은 해주지방법원과 평양복심법원 등을 오가며 재판을 받던 중 고문후유증으로 폐결핵에 걸려 1927년 12월 숨졌다. 그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장례는 황해도 재령에서 사회단체장으로 치러졌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검찰사무에 관한 기록(國內 抗日運動資料)(1) 京鍾警高秘 제13071호-1·京鍾警高秘 제15호-1
- 日帝侵略下 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제7권 574면
- 國外容疑朝鮮人名簿(朝鮮總督府 警務局, 1934) 70면
- 東亞日報(1921. 6. 15·7. 19·1925. 3. 16·1927. 12. 6)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강만길·성대경, 1996) 154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