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김효배는 1908년 1월 19일 경상북도(慶尙北道) 대구부(大邱府) 봉산동(鳳山洞)에서 태어났다. 대구고등보통학교 2학년을 중퇴하고 신문배달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1925년 10월 31일 대구의 배달부조합(配達夫組合) 조사부 위원이 되었다. 1926년 1월 일본으로 건너갔다.
1930년 도쿄(東京) 소재 관동자유노동자(關自)에 몸담았다. 전일본노동자협의회(全協) 토목건축노동동조합(土建)에서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 1931년 6월 15일 출판법 위반으로 벌금 30엔을 선고받고 6월 23일 석방되었다.
1932년 11월 삼청일(森淸一)의 추천으로 일본공산청년동맹(共靑)에 가입했다. 동경시위원회(東京市委員會) 제3지구 소석천직업소개소(小石川職業紹介所) 반원(班員)으로 삐라를 뿌렸다. 1933년에도 일본 경찰은 동경시위원회 관계자 40명을 검거하여 검사국에 보냈다. 김효배는 1933년 6월 19일 일본공산청년동맹 동경시위원회 관계자 검거 때 검거되었다. 8월 4일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김효배는 일본 반제동맹(反帝同盟)에 가입하여 중북지구위원회(中北地區委員會)에서 선전부(아지프로) 부원으로 활동했다. 1933년 4월 반제동맹 제2회 전국대회에서 종래의 규약 행동강령을 개정하고 「객관적 정세와 반제동맹의 역할」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반제동맹 규약 제2조에 “본 동맹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을 수행하고, 식민지·반식민지 및 약소민족의 완전한 독립운동을 지지함을 목적으로 함”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재일 한국인들도 반제동맹에 가입하였고, 반제동맹 중앙부에서는 이윤우(李潤雨)를 반제동맹 기관지 『반제신문(反帝新聞)』 한국어판 책임자로 선정했다. 1934년 1월 1일부터 한국어판을 창간하였으며, 대판지방위원회(大阪地方委員會)에서도 4월부터 한국어판을 간행했다.
김효배는 일본 반제동맹 동경시위원회 신전반(神田班) 반제원(反帝員)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그는 1934년 2월 4일 다시 검거되었다. 7월 20일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검사국에 송치되었다가 석방되었다. 그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1935년 9월 대구불교청년회(大邱佛敎靑年會) 권투구락부(拳鬪俱樂部)의 사범이 되었다.
정부는 2019년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조총련연구(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1972) 265면
-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在日朝鮮人關係資料集成)(박경식 편, 1976) 제3권 120, 129, 130, 142, 144, 834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