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문사세(杜門謝世) : 밖으로 출입하지 않기 위해 방문을 닫고 세상과 단절함
- 일경(日警) : 일제 경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전남 영광(靈光) 사람이다.
1907년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이 체결되고, 이어서 군대가 해산되자 9월에 전남 장성(長城) 수련산에서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가 결성되고 성재 기삼연(省齋 奇參衍)을 의병대장으로 하고 김용구(金容九)가 통령(統領)이 되자 그의 휘하에서 무기와 식량의 조달을 책임졌다.
9월 3일 고창 문수산(高敞 文殊山) 전투에 참가하고, 12월 10일 흥덕 길마전 전투에 김용구의 선봉장으로 참여하여 무동촌에서 많은 왜적을 살상하였으나 12월 27일 호남 창의군이 적에게 패하여 기삼연이 체포되고 많은 의병장이 희생되었다. 그 이후 스스로 독립하여 의병장이 되었다.
1908년 11월부터 1909년 8월까지 휘하 의병 박판동(朴判同)과 신태경(申泰敬) 이하 5명과 함께 총 2정을 휴대하고 전북 부안군(扶安郡)과 고부군(古阜郡)에서 김인구(金仁九)·한덕여(韓德汝)로부터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일관헌에게 드러나 박판동과 신태경은 체포되어 각각 징역 10년과 7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1910년 국치 이후에는 성명을 봉섭(鳳燮)으로 바꾸고 두문불출하며 숨어살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우리 고장의 충효열(전남교육원, 1980. 11. 1)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1권 738·739면
- 광주지법 전주지부 1909. 12. 1 판결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