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취(鼓吹) : 의견이나 사상 따위를 열렬히 주장하여 불어 넣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신문기자로 재직하던 중, 1927년 2월 조선공산당에 입당해 사회주의운동을 전개했다. 1928년 세칭 제4차 조공 검거사건 때 검거를 면한 그는 1930년 3월 고향인 제주에서 항일비밀결사 혁우동맹(革友同盟)을 조직하고 상임위원 겸 농민부를 책임맡아 농촌 청년, 해녀, 소년 소녀 등을 대상으로 항일민족의식 및 사회주의 사상을 고취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항일투쟁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1931년 5월 말 혁우동맹을 해체하고 조선공산당 제주도야체이카를 조직하여 구좌면(舊左面)·선의면(旋義面) 일대를 담당했다. 또한 동년 7월에는 비밀결사 ‘적(赤)’을 조직하여 책임자가 되었다.
그는 1932년 1월 제주도 해녀들의 권익을 위해 ‘제주도해녀투쟁’을 배후에서 지휘·조종하였다. 당시 관제조합인 해녀어업조합의 부정으로 해녀들이 극심한 피해를 보는 상황에서, 제주도 해녀들은 자생적으로 해녀회를 조직하고 부당한 해녀어업조합에 맞섰다. 시위로 발전한 해녀투쟁은 특히 신재홍이 담당하는 구좌면에서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다. 1932년 1월 7일과 12일 구좌면 세화장터에서는 1천여 명의 해녀들이 세화주재소의 저지를 뚫고 호미와 비창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신재홍은 제주해녀투쟁을 배후에서 조종한 혐의로 일경에 체포되어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濟州道誌(1993) 제1권 1147면
- 判決文(大邱覆審法院, 1933. 6. 5)
- 牛島誌 394∼397면
- 朝鮮日報(1932. 3. 4·5. 1·12. 27朝, 1933. 2. 8朝·2. 20·3. 4·5. 23·6. 8朝)
- 濟州抗日獨立運動史(1996, 濟州島) 301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