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03년 천도교(天道敎)에 입교하여 도사(道師)·선정(宣正)·당부집행위원(黨部執行委員)·도령(都領)·종법사(宗法師) 등의 직임을 역임하였다. 1919년 3월 2일 예배일을 이용하여 평남 중화군(中和郡) 상원면(祥原面) 천도교 교구실에서 200여 명의 교도(敎徒)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날 교도들이 모이자 천도교 중화교구의 전도사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해받은 김동식(金東植)은 교도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부르자고 제의하여 참가자 일동은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때 중화경찰서장 다카나와 키쿠지[高索菊治]와 순사부장 다무라 사부로[田村三郞] 및 순사보 1명 등이 출동하여 교구실로 들어와 군중에 해산을 명령하였다. 교도들이 불응하자 그들은 몇 명의 교도를 강제로 밖으로 끌어내려 하였다. 이에 분노한 교도들은 세 명의 경찰을 포위하였다.
그는 김동식 등과 함께 일경들이 차고 있던 칼을 빼앗은 후 돌과 몽둥이로 그들을 응징하는데 앞장섰다. 겁에 질린 일본 경찰들이 주재소로 도망하자, 그는 교도들과 함께 주재소로 달려가 주재소 집기를 파괴하는 등 격렬히 항쟁하였다.
이로 인해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6월 1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오심당(吾心黨) 활동에 참여하여 1924년 이래 농민들을 규합하여 농민조합을 운영하는 등의 활동을 계속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每日申報(1919. 6. 20)
- 判決文(高等法院, 1919. 7. 31)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권 804∼806면, 제14권 98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