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9권(2024년 발간)
동경농업대학에 다니던 1937년 6월 동창생인 김운하(金雲夏)와 ‘비참한 조선 농촌의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농민계몽운동으로부터 민족해방운동에 헌신해야 한다’는 김두혁(金斗爀)의 주장을 듣고 공감하며 결사를 조직하여 조선독립을 위해 매진하기로 결의했다.
1937년 9월부터 10월까지 김두혁의 집에서 김두혁·김운하와 함께 지도부를 결성하고, 12개 조의 기본강령을 정하였다. 주요 내용은 “조국의 독립을 도모하고 국내에 민주공화국을 건설하여 조선 고유의 문화를 발양하고 세계 문화와의 교류로 조선 민족의 행복을 증진할 것” 등이었다.
1937년 11월 조직의 확대와 강화를 위해 김두혁은 국내, 김운하는 농대 조선인 학생의 계우회(鷄友會), 김태훈 본인은 도쿄 각 대학의 조선인 학우회에서 동지를 모집하기로 협의했다. 이후 1938년 10월 도쿄에 있는 주요대학의 학생들을 동지로 참여시켜 조직을 확장했다. 1938년 11월에는 박천친목회 및 보성동지간담회를 조직하고 사상적 결속을 다졌다. 1940년 2월 1일 검거되어 그해 12월 9일 송치되었고 1943년 4월 27일 도쿄공소원(東京控訴院)에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정부는 202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박경식, 1976) 4권 410~414면, 5권 645~64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별집 제3집 164~168면, 373~376면
- 소화특고탄압사(아카시 히로타케(明石博隆)·마쓰우라 소조(松浦總三), 1975) 7권 74면
- 조선·대만 특별 요시찰인 약식명부(국가보훈처, 2016) 396면
-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박경식, 1976) 4권 1069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