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3·1운동 이후 만주 지역에서 독립군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김창하(金昌河)·안형관(安亨官) 등과 뜻을 합하여 국내로 진입한 독립군을 지원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당시 위원(渭原)은 압록강과 남만주의 대안(對岸)에 위치함으로써 만주 독립군의 국내 진입시 작전상 요로가 되고 있었다. 1921년경부터 국내에서 일제의 탄압이 가중되는 것과 함께 국내독립운동단체들은 대부분 근거지를 만주로 이동하였으며, 국내진압작전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평소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한 그는 뜻을 같이 하는 몇몇 동지들과 함께 만주 독립군의 국내 진격시 거점을 제공하면서 독립군 지원활동을 벌여 나갔다. 그러던 중 활동이 발각되어 그는 동지들과 함께 1923년 5월 1일 일경의 총격을 받고 강에 투신,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공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신문(1923. 6. 13)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93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