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이혁노는 서울 북미창(北米倉)에서 미곡상을 경영하면서 1919년경 구국단(救國團)의 단원이 되어 조국독립을 위해 군자금을 모집하고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구국단은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이후 경기도에서 정인호(鄭寅琥)가 조직한 단체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락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구국단 사건으로 1921년 4월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다. 1922년 1월 ‘무산자동지회’ 결성에 참여했고, 1922년 『신생활(新生活)』 잡지사 근무 중 필화사건이 나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피신하였다. 이곳에서 고려공산당 기관지 『선봉』과 같은 기관 잡지 『신생활(新生活)』의 주필로서 활동하였다. 1923년 8월 29일 국치일을 맞아 고려공산당은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新韓村)에서 망국기념대회를 대대적으로 거행하여 민족정신과 조국독립의 의지를 공고히 하고자 하였다. 이때 이동휘(李東輝) 등 공산당 간부들과 함께 참석하였다.
이후 이혁노는 국내로 돌아와 1924년 12월 7일 서울에서 ‘사회주의자동맹’ 창립총회에 참석하고, 집행위원에 선임되어 노동자의 권익향상과 신사회 건설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폐병으로 고생하면서도 전진회와 노동당, 서울청년회 등에서 중요한 책임을 지고 활동하였다. 1928년 제4차 조선공산당 사건 관련으로 일시 해외에 망명하였다가 1929년 봄에 비밀리 입국하였다. 그러나 1930년 3월 6일 폐병 3기로 몸도 움직이지 못한 이혁노는 경기도 경찰부에 검거되었다.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치료 중에도 심문을 받았으며, 결국 3월 22일에 시내 친족의 집에서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1권 分冊 564면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국사편찬위원회) 6권 90면
- 사회주의자동맹회 창립총회의 건(1924. 12. 8) 검찰행정사무에 관한 기록(8)
- 일한병합기념일(8월 29일)에 있어서 신한촌 선인 망국기념대회 개최에 관한 건(1923. 9. 12)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14)
- 救國團檢擧(1921. 4. 7)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3)
- 中外日報(1930. 9. 24)
- 東亞日報(1921. 3. 20, 1930. 3. 9)
- 每日申報(1921. 3. 20)
- 在京주의자 등의 최근에 있어서 활동 상황에 관한 건(1925. 1. 13) 검찰행정사무에 관한 기록(2)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창작과비평사, 1996) 38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