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25년 12월 29일 전라북도 순창청년회 총회에서 조사부 위원으로 선출됐고, 동시에 순창노동조합 대표로도 활동하며 두 단체의 연합위원 등을 역임했다. 1927년 10월 8일 순창청년동맹 정치부 담당과 검사위원으로 선정되고, 11월 23일에는 소년부 담당을 맡는 등 계속해서 간부로 활동했다. 1928년 1월에는 신간회 순창지회 발기위원으로 선출됐으며, 1929년 1월에는 간사로 선정됐다. 1929년 3월 26일 창립된 전북기자단 순창지부에서 조사부 임원이 되기도 했다.
한편 1929년경 당시 일제가 대대적으로 공산주의자를 체포해 조선청년총동맹의 집행위원도 대다수가 감옥에 있거나 행방이 묘연해져 청년운동이 진전이 없었다. 이에 조선청년총동맹에서는 청년운동의 부흥을 위해 4월 25일 대회를 개최하고자 이태환을 비롯한 50명의 대회준비위원을 선출했다. 이처럼 이태환은 순창지역에서 각 단체의 임원으로 활동하는 동시에 전국 조직인 조선청년총동맹에서도 활동했다.
1932년 충청남도(忠淸南道) 대전(大田) 군시제사회사(郡是製絲會社) 동맹파업이 발단이 돼 비밀결사인 충남전위동맹(忠南前衛同盟)이 발각됐다. 이로 인해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이 드러남으로써 전라도와 충청도 일대에서 60여 명이 체포됐다. 당시 전라남도(全羅南道) 장성협동조합 간부들도 이에 연루돼 체포됐으며 이태환도 함께 체포됐다.
이태환은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체포됐다. 이후 1933년 9월 27일 전주지방법원(全州地方法院) 검사국(檢事局)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 석방됐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동아일보(東亞日報)(1925. 12. 8, 1926. 2. 10, 10. 23, 1927. 5. 27, 7. 7, 8. 15, 9. 19, 9. 20, 10. 13, 10. 19, 11. 22, 11. 23, 1928. 1. 12, 2. 5, 7. 4, 9. 16, 1929. 1. 19, 2. 18, 2. 24, 3. 21, 3. 29, 4. 1, 4. 11, 4. 24, 7. 26, 8. 24, 1931. 3. 24, 1933. 6. 21, 7. 10, 9. 30)
- 신간회연구(이균영, 1993) 619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