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향촌회(鄕村會)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고 『독립신문』을 배부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10월경 평남 강동군(江東郡) 구지면(區池面)에서 기독교 신자 고응대(高應大), 의사(醫師) 이기옥(李基玉) 등이 결성한 향촌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향촌회는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간부 박승명(朴承明)으로부터 조선독립운동에 협력할 것을 부탁 받고 결성한 조직이었다. 기독교 계통의 대한국민회는 중국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할 목적으로 1919년 8월 3ㆍ1운동 직후 평양(平壤)에서 결성된 항일비밀결사였다. 평양에 본부를 두고, 군(郡)에는 군회(郡會), 면(面)에는 향촌회를 두었다.
강동군 구지면의 향촌회 역시 그 산하 조직으로 회장은 고적희(高迪熙), 부회장은 고응대, 회계는 이기옥이 맡아 회원을 모집하고 회비 2환씩을 거둬 임시정부에 보냈다. 또한 독립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독립신문』을 배부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0년 9월경 동료들과 함께 강동경찰서에 체포되어 11월 17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每日申報(1920. 10. 9, 11. 27)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4집 98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