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1년 평남 개천군(价川郡) 북면(北面) 용담리(龍潭里)에서 대한청년단(大韓靑年團) 단원들에게 숙박을 제공하고 길을 안내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진해는 평남 덕천군(德川郡) 주신득(朱信得)ㆍ한병석(韓炳碩)ㆍ왕익붕(王益鵬), 개천군 유신항(劉信恒) 등과 함께 1921년 3월 대한청년단에 가입하였다. 대한청년단은 1920년에 정진원(丁進源)ㆍ정계록(丁繼祿)ㆍ정붕익(丁鵬翼) 등이 결성한 대한독립단 덕천지단(德川支團)과 관계를 맺고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진해 등은 덕천ㆍ개천ㆍ영원(寧遠) 등지에서 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1921년 4월경에는 영변(寧邊) 용문사(龍門寺)에 들어가 주지(住持) 조범운(趙梵雲)에게 "너는 불도(佛道)를 숭상하며 도리(道理)를 연구하여 이 세상 민족으로 고난 고통에 빠진 자로 하여금 극락을 누리게 하고 이 세상으로 극락세계를 이루게 하겠다는 자로서 더욱이 환난 중에 있는 우리 조선독립을 위하여 군자금 천원을 기부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1921년 8월경 독립단원들에게 숙박을 제공하고 길을 인도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1년 9월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폭발물취체규칙(爆發物取締罰則)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약 9개월간 옥고를 치른 후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東亞日報(1921. 9. 19, 1922. 5. 7)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4집 51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