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19년 7월경부터 러시아 유격대 대장 메리코포스코의 통역으로 활동하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원과 교류하였고, 1920년 중국 안동현에서 김판이와 독립
운동 자금모집을 협의하였으며, 1921년 서울에서 폭탄을 제조하고 경남 밀양에
서 수 차례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1919년 1월경부터 러시아 유격대 대장 메리코포스코의 통역이 되어 간도의
이동휘(李東輝)와의 연락을 하는 한편,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원과 교류하였다.
1920년 12월 24일 중국 안동현(安東縣)에서 임시정부 요원 김판이(金判伊)를 만
나 국내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로 협의한 뒤, 같은 달 29일 김판이와 함
께 안동현을 출발하였다. 경성부(京城府)로 잠입한 이중화는 1921년 5월 중순경
까지 모의 폭탄을 제조하는 한편,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독립공채증서 1,000원권,
500원권, 100원권 등 총 7,600원 상당의 증서와 임시정부 재무총장 이시영(李始
榮) 명의의 수령서 10매를 휴대하고 경남 밀양(密陽)으로 향하였다. 밀양 도착
후 같은 군 북면(北面) 사포리(沙浦里) 거주 박수엽(朴秀燁), 북면 대순리(大順
里) 거주 박병목(朴炳穆)으로부터 각 2회, 북면 퇴로리(退老里) 거주 이병규(李炳
圭)로부터 1회, 같은 군 산외면(山外面) 금천동(琴川洞) 거주 손진원(孫振遠)으로
부터 3회, 산외면 남기리(南沂里) 안종엽(安鍾燁)으로부터 1회에 걸쳐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또한 동지 손형로(孫亨魯)에게 북면 퇴로리 거주 이재형(李載亨)에
게 군자금을 모집하도록 하는 등 3,000여 원의 군자금을 모집하여 음력 7월경
김판이에게 전달하여 임시정부로 송금하도록 하였다. 그 뒤 대구와 밀양을 오
가며 김판이의 귀환을 기다리던 중, 1921년 10월 21일 대구 대화정(大和町)에서
대구경찰서 형사에게 체포되었다.
1922년 2월 2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강도·폭발물벌칙 위반·대정(大正)8년제
령(制令)제7호 위반으로 징역 8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3월 3일 공소
취하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刑事控訴事件簿
- 獨立新聞(1921. 11. 19)
- 東亞日報(1921. 11. 6)
- 判決文(大邱地方法院:1922. 2. 21)
- 每日申報(1921. 11. 10)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제9집 1114~1115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