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경남 안의(安義) 사람이다.
의병으로 오일선(吳馹善) 의진에 참여하여 활약하였다. 일제가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였다. 박민기는 국권상실의 위기를 절감하고 무장투쟁을 통해 국권을 회복하고자 1905년 안의군 북상면(北上面)(현,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에서 거의한 오일선 의진에 형 박화기(朴華箕)·박수기(朴洙箕) 등과 함께 참여하여 항일 의병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후군장(後軍將) 김성진(金成鎭)의 휘하로 조두식(趙杜植) 등과 함께 전방의 의진과 연계하면서 투쟁을 전개하였다. 1906년 이후에는 문태서(文泰瑞) 의진과 제휴하여 전투를 치렀다. 각지에서 모인 덕유산 의병 200여 명에게 군수물자를 공급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7년 거창전투, 1908년 구천동 전투, 1908년 9월 삿갓골 전투 등을 치르면서 일본군과의 교전을 계속하였다. 1909년 10월 밀정(密偵) 최고미(崔古美:일명 최곰)의 밀고로 형 박화기·박수기 등이 무주수비대(武州守備隊)에 의해 붙잡혀 순국하자, 1912년 4월 26일 안의군 북상면 양지리에서 최고미를 처단(處斷)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그는 붙잡혀 1912년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0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大邱覆審法院, 1912. 9. 28)
- 月星擧義事蹟碑(李熙昇 撰, 1970. 8)
- 居昌郡誌(居昌郡, 1979) 149面
- 釜山慶南 3·1運動史(1979) 749·750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