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1928년 3월 일본으로 건너가 직공 등으로 일하던 중, 1934년 5월경 같은 고향 출신인 강임상(姜林詳)・현천봉(玄天奉) 등과 함께 교류하며 무산자 청년의 계몽을 위해 조직된 민족주의 비밀결사 단체인 용진회야학(勇進會夜學)에 참여하여 민족의식을 키웠다.
1934년 7월 한인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오사카에 성심야학을 설립했다. 야학 교사직을 맡아 학생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동지들을 찾는 데 힘썼다. 이러한 노력으로 김주삼(金柱三), 김성종(金性鐘), 고갑평(高甲平)이 성심야학 교사로 합류하였고 이들과 함께 학생들의 민족의식 고취에 힘을 기울였다. 이로 인해 1942년 10월 15일 체포되었다.
1943년 11월 26일 오사카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오사카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47년 7월 9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2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박경식, 1976) 4(2)권 1000~1001면
-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박경식, 1976) 5권 124, 60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13집 1346~1348면
- 소화특고탄압사(明石博隆・松浦總三, 1976) 8권 54~57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