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충청북도 보은(報恩) 출신이다.
1895년 일제의 사주에 의하여 궁궐에 침입한 일본의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내정간섭에 의해 단발령이 내려졌다.
이러한 일제의 만행에 통분함을 금치 못한 이진하는 제천(堤川) 의진의 총대장 유인석(柳麟錫)의 휘하에 입대하여 참모(參謀)로 임명되었으며, 단양(丹陽), 제천(堤川), 풍기(豊基) 등지에서 크고 작은 전투에 참전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07년 정미7조약이 체결되고 이어서 비밀각서에 약정된 바대로 한국군이 강제 해산되자, 이진하는 다시 항일투쟁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고 이명상(李明相) 의진에 입대하여 군사(軍師)에 임명되었다. 중군장에는 김규철(金圭哲)·좌군장에는 민영팔(閔泳八)·서기 이치정(李致鼎) 등으로 진용이 정비되어 활약하였다. 이명상 의진은 규율이 엄정하여 추호의 민폐도 끼치지 않도록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이어서 격렬한 포고문을 국내·국외에 선포하고 각지로 다니면서 종횡무진 적과 교전하여 많은 전과를 올리다가 풍기에서 이명상 의병장이 전사하자 군기의 부족으로 의병을 해산하고 은신하였다.
1931년 7월에는 화양문회계(華陽文會契)를 조직하고 상임유사(常任有司)가 되어 일제의 침략을 규탄하고, 토적집행위원(討賊執行委員)의 명의로 조선총독에게 경고문을 발송하기도 하였다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41·45면
- 경고총독서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권 486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