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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4132
성명
한자 柳東壽
이명 柳東旭, 柳晩秀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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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3.1운동 포상년도 1990 훈격 애족장
1919. 3. 1 독립만세 운동(獨立万歲運動)족친(族親) 유연기(柳淵琦)와 함께 편항(鞭巷)장날을 (期)하여 만세 시위(万歲示威)감행(敢行)하고 일 주재소(日駐在所) 사택(舍宅) 2(棟)기물(器物) 서류(書類) 등을 파기(破棄)하다 징역1년 집행유예(執行猶豫)3년을 받았으며 1920-1922. 5월까지 임시정부 요인(臨時政府要人)비밀 지시(秘密指示)를 받고 군자금 모집(軍資金募集)활동(活動)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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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경상북도 안동(安東) 사람이다.

1919년 3월 21일 임동면 중평동 편항(臨東面中平洞鞭巷) 장날을 이용하여 전개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15일 유연성(柳淵成)·유동수(柳東洙)·이강욱(李康郁)·홍명성(洪明聖)·박재식(朴載植)·유교희(柳敎熙)·박진선(朴晋先)·유곡란(柳谷蘭) 등이 편항 장터 동편에 있는 공동 타작장에 모여 거사에 대하여 의논함으로써 계획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편항 장날인 3월 21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군중의 동원을 분담하는 등 사전준비를 진행하였다. 그는 이 계획을 듣고 이에 적극 찬성하여 3월 21일 오후 2시, 편항 장터에 모인 1천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이곳 주재소에서 2명의 경찰이 출동하여 주동자인 유연성과 배태근(裵太根)을 체포하려 하자, 그는 시위군중과 함께 일경들에게 달려들어 주재소로 쫓아버렸다.

그리고 그가 시위군중과 함께 편항주재소로 달려가 시위를 전개할 때, 사태의 위급함을 느낀 일본 경찰 내전(內田)이 공포를 발사하자, 그는 분노한 군중과 함께 주재소의 유리창·책상·의자를 파괴하고 서류를 파기하였다. 또 일본 경찰로부터 빼앗은 대검과 소내에 비치되어 있던 장총·칼·탄환·제복 등을 거두어 그곳 우물안에 버렸다.

이때 2명의 일본경찰이 신덕리(新德里) 방향으로 도망하자, 이를 추격하여 1명을 도중에서 붙잡아 구타하였다. 신덕리로 도망한 일본 경찰은 그곳 주재소에 이르러 위급한 상황을 전하고 안동경찰서에 응원 요청을 하였다. 그후 그는 시위군중과 함께 경찰관의 사택도 습격하여 완전히 파괴하였는데, 경찰 가족들은 모두 피신하고 없었다.

오후 5시, 그는 면사무소를 습격하여 건물을 파괴하고 문서류를 파기하였다. 자정부터는 파괴해 버린 주재소의 판자로 모닥불을 피워가며 이튿날 새벽 3시까지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자진 해산하였다. 한편 급보를 받은 안동경찰서에서는 오전 5시, 순사부장 1명과 일본군 하사 이하 8명을 파견하여 대대적인 검거 작업을 펼쳤다.

결국 그는 이때에 체포되었으며, 이해 5월 31일 대구(大邱)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건조물 손괴·가택 침입·상해 및 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받았다.

출옥 후에는 상해 임시정부(上海臨時政府) 요인인 유 림(柳林)의 지시에 따라 군자금 모금에 앞장섰으며, 향리에서 후진에게 독립사상을 고취시키는 등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19. 5. 31 대구지방법원)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408·40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347·1348·1350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유동수 유동욱(柳東旭), 유만수(柳晩秀) 경북 안동 1919년 안동군 임동면 만세운동
본문
1898년 2월 2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동면(臨東面) 수곡동(水谷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이명으로 동욱(東旭)·만수(晩秀)를 사용하였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3월 21일 안동군 임동면 중평동(中坪洞) 편항시장(鞭巷市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안동군 편향시장 만세운동을 주도한 유연성(柳淵成)·유동수(柳東洙)·이강욱(李康郁) 등은 3월 15일 편항시장 동편 공동 타작장[인낙장(籾落場)]에서 만나 시위를 결의하고, 임동면을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 각자 맡은 곳의 주민들을 동원하기로 하였다. 수곡동을 책임진 유교희(柳敎熙)는 주민들을 만날 때마다 3월 21일 편항시장에서 만세시위가 있을 것이니 참여해서 모두 만세를 부르자고 권유하였다. 유교희의 제의에 만세운동에 동참하게 되었다.거사 당일 만세운동에 참여하기 위하여 편항시장으로 향하였다. 인근에서 큰 규모의 장이 열리는 편항시장에는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로 붐볐으며, 만세시위에 참여하기 위하여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오후 2시경 유연성이 장터 중앙으로 나왔다. 유연성은 군중들에게 만세운동을 왜 해야 하는지 연설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유연성의 만세 선창에 군중들과 함께 일제히 ‘독립만세’로 화답하였다. 시장 곳곳에서 울려 퍼진 만세소리에 장꾼과 주민들도 동참하여 소리 높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군중들의 열광적인 호응에 시위 열기가 점점 더해갔다.그 때에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일제 경찰이 현장에 급파되어 시위대를 해산시키려고 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경찰 한 명이 배태근(裵太根)의 뺨을 때리는 사건이 발생하자 분노하여 일제 경찰에게 달려들었다. 군중의 기세에 놀란 일제 경찰은 그 자리에서 주재소로 달아나 버렸다.곧 이어 시위 장소를 주재소로 옮겼다. 이강욱·박진선(朴晋先) 등과 함께 앞장서서 시위대를 이끌고 주재소로 향하였다. 주재소 앞에 이르렀을 때는 500여 명의 군중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시위대가 주재소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일제 경찰 한 명이 권총을 발사하였다. 경찰의 위협은 오히려 군중의 분노를 폭발시켰을 뿐 시위대는 출입문을 부수고 주재소 안으로 들어갔다. 시위대 일부는 달아나는 경찰을 쫓아가 철저하게 응징하기도 하였다.주재소에 들어가 시위대와 함께 돌과 몽둥이로 벽과 창문 등을 모조리 부쉈다. 사무실 안에 들어가서는 책상과 의자 등의 기구와 비품을 파괴하고, 서류와 장부도 찢어 파기한 후 창문 밖으로 던져 버렸다. 일제 경찰에게서 빼앗은 총검과 주재소 안에 보관하고 있던 총탄과 대검 등의 무기류도 모두 모아 주재소 뜰에 있는 우물 안에 버렸다. 시위대의 격렬한 항거로 주재소는 뼈대만 남겨 놓은 모습이 되었다.주재소 시위 이후 일부 군중들과 함께 해산하였다. 남은 1,000여 명의 군중들은 다시 면사무소로 가서 사무소의 벽과 유리창, 가스등을 부수고 사무소 안의 집기와 서류도 모두 파괴하였다. 만세시위는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이어진 후 시위대가 자진 해산하면서 마무리 되었다.다음날부터 일제 군경은 관련자 체포 작전을 펼쳤고, 이때 붙잡혔다. 1919년 4월 17일 대구지방법원으로 이송되었고, 같은 해 5월 3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 건조물손괴죄, 가택침입죄, 상해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고 풀려났다. 이 과정에서 두 달 넘게 고초를 겪었다.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수형기록

도움말
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소요, 건조물손괴, 가택침입, 상해, 보안법위반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 대구지방법원 1919-05-31 국가기록원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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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소재지
국내산재 경상북도 안동시

관련 현충시설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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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3·1독립운동 기념탑 서울특별시 중구
2 비석 안동 3·1운동 기념비 경상북도 안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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