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경북 영주(榮州) 사람이다.
1928년 2월 경북 영주청년동맹(榮州靑年同盟) 및 신간회(新幹會) 영주지회의 집행위원으로 활약했다. 평소 사회주의 사상에 깊게 공명하던 그는 식민지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29년 3월에는 영주농민조합(榮州農民組合)의 집행위원으로 활약했다. 이 때 그는 영주군에서 친일 어용청년회인 순흥청년회(順興靑年會)를 조직하자 이를 해체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던 중 일경에 붙잡혀 1930년 7월 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아, 공소하였으나 9월 1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었다.
그 후 1931년 9월경 영주에서 김봉호(金鳳浩) 등과 함께 농민운동 및 반제운동(反帝運動)을 위한 비밀결사 조직을 준비하다가 1932년 4월 농민조합(農民組合) 및 반제동맹(反帝同盟)을 설립하기 위한 비밀 협의체를 조직하는 한편 농민조합 담당자로 활동하면서 동지 포섭 등 조직 확대에 크게 힘을 쏟았다.
그러던 중 이 일이 발각되어 붙잡힌 그는 1933년 12월 2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779∼787면
- 한국공산주의운동사(이기하) 제1권 1385면
- 일제하농민조합운동연구(지수걸) 448·449면
- 판결문(1933. 12. 22 대구지방법원)
- 동아일보(1932. 8. 2, 9. 20)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
- 형사사건부
- 일제하사회운동사자료총서(한국역사연구회편) 제12집 7∼34면
- 판결문(1930. 9. 11 대구복심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