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평남 덕천(德川)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 김관수(金觀洙)는 의병장 출신으로 의병운동을 전개하는 등 집안 모두가 독립운동에 종사하였다. 그리하여 어려서부터 독립운동에 뜻을 두었던 그는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시위에 앞장섰고, 1920년에는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大韓獨立靑年團聯合會)에 가입하여 재무부장(財務部長)으로 활약했다.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는 만주에 근거를 두고 있던 대한광복군총영과 연결된 국내독립운동단체로서 평남 맹산(孟山)·덕천·영원(寧遠) 일대를 활동무대로 삼아 군자금 모집 및 독립문서 배포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때 그는 특히 군자금 모집활동에 힘을 기울여 수합된 군자금을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로 송달하였다.
그 후 1921년 6월 영원에서 형 김병열(金炳烈)과 함께 일제에 붙잡힌 그는 일경의 감시가 허술한 틈을 이용하여 탈출,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에 투신하였다.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던 그는 1922년 6월 군자금 모집과 아울러 의열적 거사를 위해 이백현(李白鉉) 등 동지 2명과 함께 폭탄과 권총을 갖고 상해에서 국내로 진입하던 중 평북 후창군(厚昌郡) 동흥면(東興面) 쌍남동(雙南洞) 상창(上昌)에서 일경 4명과 총격전을 벌이다가 총상을 입고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499·501·560·561·951면
- 동아일보(1921. 6. 17, 6. 20, 1922. 6. 25)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631·633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