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1919년 4월 12일 경상북도 영천군 영천면 과전동 시장에서도 한국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가 확산되었다. 공립보통학교 교문 앞 시장에서 1,000여 명의 군중이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평소 조선총독부의 통치를 비판적으로 생각하던 김정희도 만세 시위에 합류하였다. 이날 밤 김정희는 백색 견포(絹布)에 ‘대한독립만세’라는 글귀를 혈서로 적었다. 4월 13일 오전 11시 자신이 만든 깃발을 단독으로 들고 영천면 과전동에서 창구동에 거리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출동한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8일 3.1운동 참여 등으로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언도 받아 옥고를 치렀다. 김정희는 체포와 투옥 과정에서 큰 고통을 겪었음에도 출옥 이후 더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1926년 5월 1일 동료 이우룡(李又龍), 이동재(李東宰) 등과 일본 도쿄(東京)에서 조선문제검토회를 조직하고 조선의 불합리한 실정을 알렸다. 1927년 1월 16일 각 방면의 여성과 청년 및 대중 50여 명이 소속된 재동경조선여자청년동맹의 조사부원을 역임했다. 같은 해 8월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가나가와현 조선노동조합 조직선전부 상임집행위원, 부인부 부원 등으로 활동했다. 1928년 1월부터는 일본 근우회의 도쿄지회 선전부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대구지방법원 : 1919. 4. 28)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집행원부(執行原簿)
- 시대일보(時代日報)(1926. 5. 7)
- 조선일보(朝鮮日報)(1927. 1. 29, 8. 11, 9. 29, 10. 12, 1928. 1. 30)
- 동아일보(東亞日報)(1927. 10. 12, 11. 2, 12. 8)
- 중외일보(中外日報)(1928. 1. 6, 3. 5)
- 사상문제에 관한 조사서류(4)
- 고등경찰요사(高等警察要史)(경상북도 경찰부, 1934) 155~158면
- 삼일운동실록(이용락, 1969) 738, 739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364~365면
-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박경식, 1976) 828, 829면
- 조선문제자료총서(박경식, 1990) 제12권 306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