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3.1운동 이후 만주 지역에서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을 조직하여 활동하던 안병찬(安秉瓚)은 국내외에서 청년단체들을 통일하여 청년단체 연합회를 조직하고자 했다. 이에 김승만(金承萬)‧김시점(金時漸) 등이 1919년 11월 1일 서간도 안동현(安東縣)에서 대한청년단연합회를 조직하였다. 대한청년단연합회는 군자금 모집‧무기 구입‧의용단 조직을 목적으로 활동했다.
김윤문은 함경남도 함흥군 동평리에서 채규연(蔡奎淵)과 함께 대한청년단연합회 함경도의용대를 조직하여 대원과 군자금을 모집했다. 대한청년단연합회 함경도의용대는 박경구(朴徑九)가 중국 관전현(寬甸縣)에서 대한청년단연합회에 가입하고, 국내 조직을 위해 함경남도 함흥에 파견되면서 조직되었다.
1920년 6월말 박경구는 채규연‧김조규(金助圭)‧주배희(朱培熺) 등과 함께 함경남북도에 대한청년단연합회 소속 함경도의용대를 조직하였다. 함경도의용대에는 문서의 배포 선전과 교통‧연락, 군자금 모집 그리고 단원 모집 등을 담당하는 부서를 두었다. 김윤문은 상무연구회(商務硏究會) 서기를 맡았다.
1920년 9월 15일 유창운(劉昌運)이 대한청년단연합회 인장을 조각하고, 송염조‧김윤문 등과 함께 통고문을 작성하여 발송했다. 같은 해 10월 이후 함흥면 각 지역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여 140엔을 모았다. 이처럼 김윤문은 함경도의용대에서 상무연구회 서기로서 군자금 모집 운동을 이어가다가 1921년 1월 24일 동지 8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같은 해 2월 25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공소하였다. 3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2년 1월 4일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202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불령단관계잡건(不逞團關係雜件)-조선인(朝鮮人)의 부(部)-재내지(在內地)(12)-불령선인 침입 및 검거(조선총독부 경무총장 : 1921. 2. 10)
- 불령단관계잡건(不逞團關係雜件)-조선인(朝鮮人)의 부(部)-재내지(在內地)(12)-함경도의용대 검거(조선총독부 경무총장 : 1921. 3. 2)
- 동아일보(東亞日報)(1921. 3. 1)
- 조선일보(朝鮮日報)(1921. 3. 13)
- 형사공소사건부(刑事控訴事件簿)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