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전북 전주(全州) 사람이다. 그는 경성사립공과학교(京城私立工科學校)를 졸업 후 1941년 2월 전남 광양광업소(光陽鑛業所)에서 근무하던 중 한국인에 대한 민족차별을 당하면서 항일의식을 키워 갔다. 또한 일제가 내선일체(內鮮一體)의 미명 아래 민족말살을 획책하고 민족적 탄압을 강화해 가자, 일제에 대항하여 독립운동을 구체적으로 전개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동료 김채룡(金彩龍)·전호영(田浩榮) 등과 함께 내선일체의 허위성을 지적하고 독립을 위해 초석이 될 것을 맹세한 후 그 구체적 방안으로 한국문학을 연구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기로 하였다. 이후 그는 광양광업소에 근무하는 청판인수(淸坂仁秀)와 평전통대(平田統大) 등에게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역설하면서 한국을 재건하기 위해 궐기할 것을 촉구하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이러한 사실이 발각되어 그는 1942년 11월 27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제13권 292∼294면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