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20년 황해도 장연군(長淵郡)에서 대한적십자사(大韓赤十字社) 청년회의용단(靑年會義勇團)에 가입하여 단원과 군자금을 모집하고, 친일파 및 밀정 처단을 계획하는 등의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적십자사 청년회의용단은 원래 1919년 음력 10월 장규섭(張奎燮)이 평양(平壤) 관후리(館後里)의 한복창(韓復昌)으로부터 '적십자사 규칙, 사원모집에 관한 위임장, 영수증' 등을 받고 활동을 모색하던 중, 1920년 음력 7월 김원려를 비롯해 김도현(金道賢)ㆍ이홍선(李弘善)ㆍ김순길(金順吉)ㆍ박치남(朴致楠)ㆍ구양현(具良鉉) 등을 규합하여 결성한 비밀결사였다. 처음 명칭은 '대한적십자사 청년단'이었는데, 나중에 '대한적십자사 청년회의용단'으로 개편되었다.
의용단에서는 단(團)을 10인 단위의 소단(小團), 소단 10개의 분단(分團), 분단 10개의 도단(都團)으로 편성하였으며, 도단에는 단장(團長) 1명과 참모를 두고 사령관이 이를 통할하기로 하였다. 사령관은 장규섭, 면(面) 단장은 박치남ㆍ곽규호(郭奎浩)ㆍ임종문(林宗文)ㆍ손상대(孫常大)가 맡았으며, 김원려는 참모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이후 이들은 황해도 장연ㆍ송화(松禾)ㆍ옹진(甕津)ㆍ해주군(海州郡) 등지에서 약 200명의 단원을 모집하였다. 이 회원들로부터 입단금 명목으로 매월 30전씩 징수하여 육혈포를 사들이고, 권총대(拳銃隊)를 조직하여 형사, 순사, 밀정, 친일파 등을 처단할 것을 계획하였다. 또한 단원들에게 『독립신문(獨立新聞)』과 「임시군사주비단(臨時軍事籌備團) 단칙(團則)」 등을 배포하였으며, 중국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락하여 독립공채(獨立公債) 100원 권 10매를 군자금 모집 목적으로 면 단장 곽규호 등에게 교부하였다.
김원려는 이홍선(李弘善) 등 5명의 동지에게 권유하여 의용단에 가입시켰으며, 김근식(金根植) 등으로부터 입단금을 징수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1921년 3월 80여 명의 단원들과 함께 장연경찰서에 체포되었다.
1921년 6월 28일 해주지방법원(海州地方法院)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해주형무소(海州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2년 7월 25일에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大韓赤十字社와 義勇團員檢擧(1921. 5. 10)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3)
- 東亞日報(1921. 5. 3, 5. 14, 7. 3)
- 每日申報(1921. 5. 3, 5. 14)
- 朝鮮日報(1921. 5. 3, 5. 14)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4집 504면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編, 1967) 제1권 分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