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평남 평양(平壤) 사람이다.
평양 숭의여학교(崇義女學校) 교사로 근무하면서 1913년에 비밀결사 송죽회(松竹會)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비밀결사 송죽회는 숭의여학교 출신과 교사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여성비밀결사로서 점조직에 의한 절대 비밀을 유지해 갔다. 이들 송죽회 회원들은 전국 각처의 여학교에서 교편은 잡으며 학생들의 항일의식 고취에 힘을 쏟았는데, 그는 배일혐의로 1916년 일제에 의해 면직당하였다. 면직 후 그는 전도사로 활동하면서 독립의식 고취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던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평양에서 기독교회 여성들을 주도하며 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의 추격을 받아 상해(上海)로 망명하였다.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가하던 그는 군자금 모집을 위해 1919년 7월에 비밀리에 귀국하여 평양에서 비밀결사 부인회(婦人會)를 조직하고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부인회는 회원의 규모가 8백여 명에 이를 정도로 조직이 크게 발달하였다.
이렇듯 부인회를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던 중 그는 병을 얻어 1919년 9월 19일에 작고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58·118면
- 독립신문(1919. 10. 2, 10.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