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훈전자사료관

통합검색
독립유공자 명단보기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3889
성명
한자 李建奭
이명 李漢卿, 李源弼, (號)醒石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등록된 사진이 없습니다.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의열투쟁 포상년도 1963 훈격 독립장

관련정보


2021년 1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1. 을미지변(乙未之變)(1895년) 후 복수상소 3회(復讎上疏三回) 아일(俄日)화자(禍者)로 보고 자강지책(自强之策)연소(聯疏) (기려수필(騎驢隨筆) p.50)
2. 1905년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 체결시 역신(逆臣) 박제순(朴齊純) 조중응(趙重應)주살(誅殺)하려다 피검(被檢), 옥중에서 토혈순사(吐血殉死) (항일순국의열사전(抗日殉國義烈士傳) p.296 p.56)
3. 1905년 을사오조약(乙巳五條約)매국대신(賣國大臣)자살(刺殺)하려다 피체되어 옥중에서 구혈사(嘔血死) (한국독립운동사(韓國獨立運動史) p.17)
4. 1905년 을사오조약(乙巳五條約)을 반대하다가 피체되어 옥중에서 토혈수승이사(吐血數升而死) (기려수필(騎驢隨筆) p.80)
5. 을사조약(乙巳條約) 반대상소(反對上疏) 재수 중(在囚中) 구혈이사(嘔血而死) (매천야록(梅泉野錄) p.373)
6. 의병피구(義兵被拘) (매천야록(梅泉野錄) p.383)
7.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조인(調印)되자 6차에 달하여 토역(討逆) 항일(抗日) 복권(復權)에 관한 상소(上疏)를 하는 일면(一面) 서북청년(西北靑年) 수십인을 규합하여 역적을 암살하려다 발각되어 왜 헌병사령부(倭憲兵司令部)체포 수금(逮捕囚禁) 6개월 수금(囚禁)중 단식 십사일만에 자수(自手)교자자진(絞自自盡)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경북 금릉(金陵) 사람이다.

1905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침략의 원흉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앞세우고 이에 동조하는 오적(五賊 : 李完用·朴齊純·李址鎔·李根澤·權重顯)과 더불어 을사늑약(乙巳勒約)을 강제하였다.

나라의 외교권(外交權)과 행정권(行政權)을 박탈당하는 내용의 조약늑결 소식이 전해지자 온 나라 안은 일제와 오적신을 규탄하고 조약의 부당함에 항의하는 소리로 진동하였다.

그 중에도 평소 충효(忠孝)를 근본으로 하는 유교학문(儒敎學問)에 종사하여 온 유림(儒林)들의 분노와 울분은 대단하였다. 또한 정부 내에 있던 문인 관리들은 망국조약이 있을 수 없는 망극한 일이라는 것과 적신(賊臣)들의 불법하고 불의(不義)한 사실을 들어 광무황제에게 상소하여 적신들의 처단과 조약의 취소를 청원하였다.

그는 1905년 을사조약 늑결 소식을 듣고 전에 승지(承旨)로 있던 이석종(李奭鍾) 등과 함께 유약소(儒約所)를 설치하고 이어서 조약의 부당함과 적신들의 처단을 조직적으로 상소하기 위하여 13도소청(十三道疏廳)을 구성하였다. 이에 따라서 유생(儒生)들은 일제와 매국노들의 온갖 방해와 협박을 무릅쓰고 연명으로 광무황제에게 조약의 폐기와 반역자들의 매국적 행위를 규탄하고 그들을 처단하라는 상소를 올렸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이러한 상소에 대해 의롭지 못한 만행으로 대처하여, 상소항쟁을 거듭하던 그를 비롯한 많은 애국자들을 회유하고 또 한편으로는 협박하여 기세를 꺾으려 온갖 책동을 다 부렸다. 그는 일본군 파견사령부에 감금되어 한편으로는 일제(日帝)의 협박과 회유에도 결코 굽히지 않고 소신을 지켰다.

그의 절의(節義)는 몇 차례의 토혈(吐血)에도 굳게 이어졌으나, 결국 1906년 5월 10일 옥중에서 피를 토하며 분사(憤死)하고 말았다. 그의 대쪽과 같은 절의와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그가 순국한 후 버선 속에 감추어져 있던 아들에게 쓴 다음과 같은 요지의 유서에 잘 나타나 있다.

"아아! 사람이 그 누가 죽지 않겠는가마는 죽고자 하는 곳에서 죽기란 어려운 것이다. 내가 죽어도 눈을 차마 감지 못할 일이다. 아아 응수(應洙)야! 너는 이 애비의 죽음을 애통해 하지 말고, 네 애비가 매국노를 주살(誅殺)하지 못하고 죽음을 가슴아프게 생각하며, 네 애비가 국권을 회복하지 못하고 죽음을 애통해 해라. 지금 피를 토하고 죽음에 있어 몇자로 너와의 이별에 대하고자 한다. 내가 죽은 후에 너는 슬퍼함으로써 효도를 하지 말 것이며, 예를 갖추어 장사지내지 말고, 마땅히 내 뜻을 이어야만이 내 자식이 됨을 명심하라!"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기려수필 80·81면 ·매천야록 373·383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330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111·112·11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8권 7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2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652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이건석 자 : 한경(漢卿), 한경(漢京), 호 : 성석(醒石), 이명 : 이한경(李漢卿), 이원필(李源弼), 이필화(李弼和) 충북 영동(永同) 명성황후(민비) 사해 사건, 을사늑약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바로가기

관련 현충시설 정보

도움말
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기타 여래사 순국선열봉안소 및 순국선열위령탑 서울특별시 성북구
2 비석 대한의사 이건석선생 기념비 충청북도 영동군

감사의 글 Total 0
목록 개수

인쇄 목록
  •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십시오.
  • 이용자의 참여가 사이트 가치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는 정부포상 결정당시의 ‘공적조서’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 독립유공자 공훈록은 공적조서상 근거정보를 기본바탕으로 전문가의 원고집필을 통해 발간된 책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 따라서, ‘공적개요(공적조서)와 공적내용(공훈록)’은 원칙적으로 수정불가하며,
  • 다만,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기본정보(성명, 생몰일자, 본적지)에 대한 사항은 ‘오류신고’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페이지 별 오류신고
화면(사료)위치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 이건석(관리번호:3889) 오류 유형 *
오류 제목 *
오류 내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