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일본 이기시(尼崎市) 소재 관서학원고등상업학교(關西學院高等商業學校) 1학년 재학 중에 교내에서 일인으로부터 모멸, 차별을 받는 것과 한인의 비참한 생활환경을 목도하며 민족의식을 각성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1943년 6월경부터 항일민족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의하고 지식층에 대한 민족의식 고양과 단결을 도모코자 하였다. 그리하여 1943년 6월 초순에는 조선총독부 총무국(總務局) 문서과(文書課)에 근무하던 학우(學友) 서원수(徐元洙)에게 "나는 조선동포 구제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자네도 이에 협력하기 바란다"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고, 같은 해 8월 귀국해서는 그를 직접 방문, 독립운동에 진력할 것을 격려하였다. 이 시기에 부산 해운대 철도원으로 재직하고 있던 지우(知友)에게 "조선동포의 구제를 위해 조선청년은 끝까지 노력하자"는 내용의 서신도 보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이기시(尼崎市)에 거주하던 친구에게도 위와 같은 취지의 서신을 보내는 등 독립운동을 선전하던 중 1943년 10월 28일 병고현(兵庫縣) 천서시(川西市)의 천서항공기회사(川西航空機會社) 작업현장에서 일경에 붙잡혔다. 1944년 9월 11일 신호(神戶)지방재판소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 형집행유예고지서(1944. 9. 14, 신호지방재판소 검사국)
- 소화특고탄압사(명석박륭) 제8권 203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