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3월 경남 동래군(東萊郡) 구포면(龜浦面)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덕원은 1919년 3월 29일 구포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던 김옥겸(金玉兼) 등 12명이 일본 경찰에 구금되자,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임봉래(林鳳來) 등 1,2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오후 3시 구포경찰관주재소로 갔다. 그는 군중과 함께 곤봉과 돌로 주재소 물건을 파괴하고, 순사 삼포양평(三浦良平)ㆍ김순섭(金順涉), 부산헌병분대 오장 곡원교(谷元喬)와 상등병 근등육삼랑(近藤六三郞) 등을 응징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9년 8월 2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騷擾罪)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豫審終結決定書(釜山地方法院 : 1919. 7. 16)
- 名籍表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193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