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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3587
성명
한자 韓鳳仁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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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중국방면 포상년도 1990 훈격 애국장
1919년 이후 의열단(義烈團)에 참가하여 군자금모집과 밀양경찰서 폭파 및 무기 반입 등에 협력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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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경남 밀양(密陽) 사람이다.

일찍이 만주로 망명하여 1919년 11월 길림성 호림(吉林省 虎林)에서 의열단(義烈團)에 참여, 무력투쟁을 통한 조국독립을 결의하였다.

1920년 12월 국내에 입국하여 군자금 모집에 활발한 활동을 벌이면서 동지인 김원석(金元錫) 등과 밀양경찰서 폭탄투척 사건에 관여하였다. 1925년 의열단의 군자금 모집의 밀양지역 담당으로 활약하면서 동지 이종암(李鍾岩)과 함께 모종의 거사를 위해 무기와 폭탄의 반입에 관련되어 일경에게 붙잡혔다. 1926년 12월, 징역 8월형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8권 294·34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388·390·391·394·399·401·402·404·405·412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6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535·538·539·541면
  • 동아일보(1926. 11. 11, 11. 12, 12. 8, 12. 11, 12. 18, 12. 19, 12. 20, 12. 21, 12. 22, 12. 29)
  • 기려수필 301면
  • 고등경찰요사 234·235·239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180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한봉인 창씨명 : 서원탁남(西原卓南) 경남 밀양 경북 의열단사건
본문
1898년 11월 21일 경상남도 밀양군(密陽郡) 밀양면(密陽面) 가곡리(駕谷里)에서 아버지 한춘서(韓春瑞)와 어머니 김해옥(金海玉)의 3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창씨명은 서원탁남(西原卓南)이다. 형 봉근(鳳根)은 의열단(義烈團) 간부로 활약하였고, 아우 봉삼(鳳三)도 독립운동가이다. 1909년 밀양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13년 졸업하고, 밀양농잠학교를 거쳐 부산상업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숙부 한춘옥(韓春玉)이 경영하는 밀양의 운송점에서 근무하던 중인 1917년, 금고에서 100원을 인출하여 밀양공립보통학교 동창생인 친우 김원봉(金元鳳)과 함께 만주로 갔다. 난징(南京)으로 유학 가는 김원봉과 헤어진 후, 평톈(奉天)에서 삼광상회(三光商會)를 경영하며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던 고종사촌 구영필(具榮佖)에게 가서 의탁하여 지낸 것으로 보인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운동자들이 집결해 있는 지린(吉林)으로 갔다. 거기서 재회한 김원봉의 요청으로 5월에 독립운동자금 모집차 국내로 들어와, 경북 칠곡군(漆谷郡) 임천면(林川面) 신동리(新洞里)에 사는 이명근(李命根)에게 김원봉의 뜻을 전하고 수천 원을 내달라고 요구했는데 거절당하였다. 1919년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하여 다녔으며 동년 11월 10일 지린에서 항일투쟁 비밀결사로 의열단이 창립될 때 참석한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사실 여부가 불분명하다. 1920년 봄에 의열단 창립 단원 대다수가 국내로 잠입하여 제1차 국내 총공격 거사를 추진하다 일제 경찰의 첩보망에 포착되어 6월부터 거의 모두 붙잡혔을 때, 피검도 수배도 되지 않았다. 이는 전년도 5월에 귀국한 후 다시 출국하지 않고 가업에 충실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920년 가을에서 이듬해 봄 사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오카야마현(岡山縣)의 금광중학(金光中學)에 입학하여 1923년 수료하였다. 그해 귀국하여 11월 진효순(陳孝淳)과 결혼하였다. 1924년 1월 1일 밀양소년단(密陽少年團) 주최로 열린 신년벽두 강연회에서 「결심(決心)」이라는 연제로 강연하였다. 1925년 9월 만주 지린성 닝쿠타(寧古塔)로부터 국내로 잠입한 의열단 간부 이종암(李鍾岩)이 폭탄거사 자금을 마련코자 경남·북 일원의 동지들과 접촉하며 암행하다 11월 6일 경북경찰부의 은신처 급습으로 붙잡히면서 관련자 10여 명 모두 붙잡혀갔다. 이른바 ‘경북 의열단사건’이다. 이때 같이 피검되어 경북경찰부로 압송되었다. 취조 결과, 이종암에게로 오는 서신을 대신 받아서 배중세(裵重世)에게 보내면 배중세가 그것을 이종암에게 전달하는 식의 연락중계 임무를 수행했음이 드러났다. 1926년 3월과 6월 두 번의 구류갱신결정 끝에 동년 10월 보석허가로 출감한 상태에서 11월 2일 대구지방법원의 예심종결 때 유죄 결정이 내려져 기소되었다. 징역 1년이 구형된 후 동년 12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미결구류일수 중 20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1929년 2월 13일 밀양군민 대다수와 모든 사회단체가 반대해 왔음에 맞서서 군청의 역전(驛前) 이전을 촉구하는 일본인 대지주 및 역전 주민 100여 명 개최의 ‘시민대회’에서 연설하였다. 본가와 처가 양쪽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작용한 때문인 듯하다. 1931년 5월 밀양읍 의원 선거에 출마했는데 낙선하였다. 1940년 7월 창씨개명했음이 확인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수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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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폭발물취체벌칙위반,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대구지방법원 공판에 부함 대구지방법원 1926-11-02 국가기록원
2 판결문 폭발물취체벌칙위반,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징역 8월2년간 집행유예 대구지방법원 1926-12-28 국가기록원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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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소재지
국내산재 부산광역시 금정구

관련 현충시설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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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기념관 의열기념관 경상남도 밀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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