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3월 전북 옥구군(沃溝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월 1일 서울 천도교구에서 전주(全州) 천도교구실로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자, 익산(益山) 교구실의 박영진(朴永鎭)은 교구 임원들과 함께 독립만세운동 계획을 논의하였다. 옥구군의 교인 김종수는 노춘만(盧春滿)ㆍ신현성(申鉉成)ㆍ최공훈(崔公勳) 등과 이 회의에 참여하고, 기독교 측과도 연락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1919년 3월 6일 군산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만세시위를 준비하던 이들은 각자 업무를 분장하고 영명학교 등사판을 이용해 선언서 7천 매를 등사하였다. 그러나 일본 경찰에 사전 발각되어 군산경찰서로 연행되었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결국 거사일을 하루 앞당겨 3월 5일 옥구군 개정면(開井面) 구암리(龜岩里)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시위대를 이끌고 군산으로 향했다. 군산에 도착한 시위대는 군산경찰서 등 각처에서 만세시위를 하다가 출동한 일본 경찰에 대다수의 시위 지도부가 체포되었다.
1919년 3월 17일 군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受刑人名簿
- 執行原簿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3권 517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