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해남의 3.1만세운동은 해남공립보통학교 학생 김규수(金奎秀)에 의해 계획되었다. 4월 6일 오후 1시경 김규수·김한식·양동훈 등이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자 군중들도 합세하였다. 일본 군경의 무력진압으로 시위대는 해산되었고 주도자는 체포되었다.
4월 11일에 해남읍내 김동훈(金東勳) 등을 중심으로 하는 만세시위가 다시 전개되었다. 김동훈은 자기 집에서 목판을 만들어 김경두 등과 함께 태극기 800여 장과 당목으로 대형 태극기 6개를 제작하였다. 오후 1시경 태극기를 해남의 큰 길거리로 운반한 다음, 당목으로 만든 큰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얼마 후 일제의 무력진압으로 시위대는 해산하였으며 주도자들은 체포되었다. 오후 4시경에는 이호상·선화인·안장길(安長吉) 등이 홍교부근에 모여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었다.
이호상은 4월 11일 해남 홍교에서 만세를 부르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17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笞) 60도(度)의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1919. 4. 17)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20권 223~225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