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19년 4월 1일 통영군 이운면 아주리의 윤택근은 만세운동 실행을 결심하고 아양리(鵝陽里) 이주근(李柱根)에게 권유했다. 이에 동의한 이주근은 같은 마을의 이인수(李麟洙)에게도 전하여 참가 동의를 얻었다. 이인수는 이중수(李仲洙)와 함께 아양리 서당에서 양지(洋紙) 10여 장에 ‘대한제국 독립만세’라고 쓴 유인물을 제작했다. 4월 2일 밤 아주리 이선이(李仙伊)의 집에 윤택근을 비롯한 여러 명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윤택근이 “내일 태극기를 만들어 독립만세를 부르자”고 제안하여 모두 협의했다. 이어 이인수가 이중수와 만든 종이 유인물을 시장의 상점 문이나 도로에 붙이거나 뿌렸다. 그리고 4월 3일 오후 7시경 윤택근이 ‘대한국독립만세’라고 쓴 종이 깃발을 가지고 만세를 불렀다. 이어 이인수・이주근 등의 주도로 이태수를 비롯한 시장 군중 약 30~50명이 ‘한국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태수는 만세운동 참가로 장승포헌병주재소 헌병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7일 거제헌병분견소에 구류되었다. 4월 18일 부산지방법원 통영지청 검사국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에 대해 기소유예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부산지방법원 통영지청:1919. 4. 21)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285~286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