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3월 경남 동래군(東萊郡) 구포면(龜浦面)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경성의학전문학교 재학생 양봉근(楊奉根)은 3월 중순 구포로 내려와 구포면 서기 임봉래(林鳳來)에게 서울과 평양의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고, 구포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을 펼칠 것을 촉구하였다. 임봉래는 윤경(尹涇)ㆍ유기호(柳基護) 등에게 이를 알리고, 3월 27일과 28일 박영초(朴永初)ㆍ이수연(李守連) 등과 논의하여 3월 29일 구포 장날에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한 뒤 태극기와 문서를 만들어 여러 사람에게 알렸다.
강석이는 1919년 3월 29일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여 1,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 군중의 열기가 높아지자, 일제는 김옥겸(金玉兼) 등 12명을 현장에서 체포하여 구포경찰관주재소에 가두었다. 그는 이들의 석방을 위해 임봉래ㆍ윤정은(尹正殷)ㆍ변봉엽(邊奉燁) 등과 함께 1,200여 명의 군중을 이끌고 구금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구포주재소를 공격하고, 일본인 순사를 응징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9년 8월 2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192~193면
- 豫審終結決定(釜山地方法院:1919. 7. 16)
- 名籍表

